상도장로교회.  금요성령집회. 2017.07.21.

최승일목사님. <적극적인 순종> 마태복음 21장28절~32절. 

 

 

 

예수님의 예화.

두 아들이 있는데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했다.

첫째는 가겠다고 하고 안갔다.

예스맨이다.

겉으로는 차마 노라는 소리를 못하고 간다고 해놓고 가지 않은 것이다.

처세술이 되게 뛰어나다.

일단 가겠다고 해놓고 변명을 대서 안 갈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는 가기싫다고 했지만 뉘우치고 갔다.

겉으로는 센척을 했지만 속이 약해서 가게되었다.

반항아이다.

반항을 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결론은 둘 중에 과연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했을까.

 

우리는 둘째가 하는게 맞다고 한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첫째아들은 종교지도자들이다.

그때 당시의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을 말한다.

앞에서는 다 하겠다고 하고 뒤에서는 안하는 사람들.

 

둘째아들은 창녀와 새리들을 말한다.

이 사람들은 처음에는 전혀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지 못하는 자들이었지만

후에는 뉘우치고 믿은 사람들을 말한다.

 

우리는 첫째와 둘째중에 어디에 속할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첫째와 둘째 둘 다 완벽하게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셋째아들이 있다면 아마도 예스라고 대답을 하고 적극적으로 일을 할 것이다.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면

하나님께서도 엄청 기뻐하실 것이다.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셋째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세번째아들이 될 수 있기를 권면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버지께만 기쁨드리는 우리가되자.

 

상도장로교회. 금요성령집회. 2017.07.14.

최승일목사님. <하나님의 소원을 아십니까?> 빌립보서 2장 12절~16절.

 

 

운좋은 사람이 되려면 행운을 잡아야 한다.

공평하게 행운이 찾아오지만

삶의 태도와 자세로서 행운이 올 수도, 놓칠 수 도 있다.

 

이것은 세상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저 10개,100개중에 한개가 맞는 것은 행복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이기에

이미 주님 안에서 복 있는 사람이 되었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닝 안에서 복 있다는 것 중

구원을 받은게 제일 복 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

 

다른건 몰라도 하나님이 나를 자녀삼았고

하늘나라로 갈 수 있게 하셨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구원을 받아들이는것.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심을 알진데

하나님의 뜻과 소원을 두셨다.

 

하나님의 소원이 우리 안에 담겨 있다.

그리고 행하신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 나가면서 이루어진다.

 

어찌 나같은 자에게 이런 역사가 있을 수 있는지 깨달아라.

행복을 기회삼아서 몸부림치면서 잡는다는 것을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밤낮으로 뛰면서 행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 안에 주시는 소원을 통해 행복해진다.

 

아이의 마음속에 부모의 소원이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녀가 자라나면서 자녀가 부모의 소원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게 불효다.

부모는 너무너무 서운할 것이다.

 

하나님도 똑같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모른다면 정말 불행한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소원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좋은 자녀가 되는 것이고,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억하고 계시고 최선을 다해 지켜주신다.

 

"모든 일은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 빌립보서 2장 14절 - 

 

원망을 하다 보면 주변 사람들도 원망을 알게 되고, 원망을 하게 된다.

부모가 불평하고 원망하다보면 자녀가 보고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흠 없고 순전한 자녀이기에 빛들로 나타낸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 것이 소원이다.

우리도 하나님께 기쁨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있길 소망한다.

 

상도장로교회. 주일낮예배. 2017.07.09.

최승일목사님. <하나님께서 나를 웃게 하십니다> 창세기21장1절~7절.

 

 

 

 

 

 

 

 

상도장로교회. 금요성령집회. 2017.07.07.

최승일목사님. <크리스찬의 용기> 빌립보서 1장19절~21절.

 

 

 

골프계소식이 많이 들린다.

한국선수들의 얼굴은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골프선수들은 필요한 것이 3가지가 있다.

 

1.자신감.

자신감이 없으면 안된다.

어려서부터 기본기가 튼튼하기에 샷이 기가막힌다.

대단한 실력들이 있다. 자신감을 가져야한다.

 

2.집중력.

골프처럼 집중력을 요구하는 스포츠가 얼마나 있을까.

극도의 집중력.

 

3.용기.

세계에서 한국선수가 각광받을 수 있는 용기.

담력과 용기를 길러야 한다.

실력,자신감,경험 그리고 집중력은 용기에서 비롯된다.

용기에 따라서 사람들이 달라진다.

응원도 한몫한다.

 

혼자치거나 즐기려고 치는게 아닌 모든 사람들이 함께 지켜보는 경기이다.

롤로메이 책중에 창조와 용기에서 칼리지라는 단어가 나오고 심장이라는 뜻이다.

결국 심장이 멈춰버리면 모든 것이 끝이다.

모든것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다.

심장에서 펌프질을 해줘야 사는 것처럼 용기가 필요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용기가 있었다.

이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전쟁에 나갔다.

적은50만명인데 우리는2만명이라고 따지지 않았다.

현실적인 부분보다는

 

1.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그걸로 족하다.

2.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다.

 

그래서 어느곳에서든지 승리할 수 있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바울은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사도바울이 이스라엘과 같은 삶을 살았다.

평탄치 않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음에도 모든 것을 극복했다.

믿음의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만한 용기가 어디서부터 왔을까.

 

1.빌립보서1장19절에서 보듯이 용기에 대한 뿌리는 그의 구원에 관한 믿음이다.

이밤에라도 하나님나라로 들어갈 줄 믿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잡은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를 잡은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붙잡으셨기에 온전한 것이다.

 

사도바울이 항상 담대할 수 있던 이유이다.

3년동안이나 감옥에 갇혀있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당한 일이 복음전파에 진전이 되었다고

고백을 할 수 있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일임을 기억하자.

 

2.분명한 목적이 성립되었다.

목적에 대한 재조명.

돈을버는목적.

공부하는목적.

 

목적의식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내가 왜 하나님을 믿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다.

기대가 없으면 목적도 없다.

 

바울은 아무일에든지 부끄럽지 않았다.

하나님이 간절한 소망과 기대를 주셨기 때문이다.

 

좋은 목적이 있어야 좋은 가치관이 형성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수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어떤경우에도 부끄러워 하지 말자.

 

3.어떤상황에서도 용기백배의 모습을 보는 이유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받았기 때문이다.

 

죽음이 정말 두려운지 자신에게 물어보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사도바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는 내게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립보서1장21절 -    

 

죽는 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죽는 것 자체가 죽는 것이 아닌 것이기에 이 세상도 어찌하지 못한것이다.

 

그의 믿음 자체가 한결같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저 자신의 인생을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 뿐이다.

한 사람도 힘이 넘치는데 그리스도의 용기를 가진 사람이 모여 교회가 되면

이처럼 막강한 군대가 또 없을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최선을 다해 맡은 일 끝까지 하는 우리들이 되길 소망한다.

 

상도장로교회. 금요성령집회. 2017.06.30.

최승일목사님. <죄를 지은 한 여인>  누가복음 7장36절~38절.

 

 

 

 

주홍글씨라는 책은 주인공이 간음했다는 뜻을 가진 글씨를

주홍글씨로 새기게 되는 이야기이다.

평생을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고 다니는 느낌은 어떨지 모르겠다.

 

만약 교인 중 어떤 분이 간음을 당하고

교회에 나온다고 한다면 교인들도 수근거린다.

마치 중풍병자들을 피하는 것과 같다.

 

 37절에 이 여인은 가버나움이라는 동네에서 죄를 지은 한 여자.

이 당시 죄지은 여자는 이른바 창녀라고 분류된다.

 

죄를 범한 여인은 초청도 받지 않은 집에 와서 

300데나리온어치 되는 옥함을 깨뜨려서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한다.

 

이 여인은 변화받은 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선을 다 해서 하나님을 섬긴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변화된 모습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 중에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 여인은 다행히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1.여인은 이 엄청난 향유를 부은 것이 이해못할 행동이다.

 

하지만 이 엄청난 것을 깨트린 것은 남다른 감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죽어가는 자기의 모습을 예수님을 통해 새 생명을 얻고

주체할 수 없는 행복함을 얻은 모습으로 바꿀 수 있었다.

 

그만큼 감격하고 감사를 하면서 살 수 있었다.

 

우리도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생각해보고 감사해야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다 갚을지 생각해보자.

 

사랑하면은 그 생각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우리와 주님의 관계는 어떠한지 바라보자.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주님이 생각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은 이거 뿐만 아니라 더 한것도 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2.이 여인은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여인은 창녀이고 죄인이고 손 대는것 조차 불결하다.

 

바리새인은 겁을 따지기 때문에

창녀된 여인의 입장에서도 바리새인이 경멸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비난과 두려움을 감안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을 만나려고 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주님을 만남으로서 변화받은 여인을

예수님의 제자들도 화를 내면서 향유를 깬 이유를 묻는다.

 

어떤 비난 다 내려놓고 주님 곁에 나온 이 여인이 변화를 받은 것이다.

 

3.누가복음7장50절에보면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감격해서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이야기한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서 감격을 했다.

이제는 평안히 가라고 이야기 한다. 

약속이 담긴 말이다.

 

네가 가는곳 어디든지 내가 너를 지켜줄것이고

버리지 않고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자 친구라고 이야기한것이다.

 

죄는 누구나 있고 마음으로 지은 죄는 정말 크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여인처럼 변화를 받았는지 생각해보아야한다.

 

주님 안에 있는 이 여인은 친구와 같은 여인이다.

우리도 변화를 받음으로써 죄를 내려놓고 하나님과 친구가 되길 소망한다.

 

상도장로교회. 금요성령집회. 2017.06.23.

최승일목사님. <믿음이 있는 자는 복을 받느니라.> 갈라디아서3장6절~9절.

 

 

 

마음에 어떤 결심 정도보다 처음 것을 더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한다.

내 삶의 부분이 될 수 있어야 실천으로 옮길수 있다.

 

더 깊고 깊은 사랑을 나누기위한 조건이다.

이렇게 살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 된다.

시간이 지난다고 신앙을 잃어버리고 살면 안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갈라디아서 3장 6절.- 

 

세상적으로 사는 신앙인을 보면 안타깝다.

지켜나가지 못하면 어리석을 수 밖에 없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이다.

사람의 처음 믿음이 흐지부지된다.

참된 신앙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현실이라는 삶 속에 지내는 것을 이해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면 좋겠다.  

처음 믿음이 깊고 깊어져서 아름다운 마음이 되길 소망한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라디아서3장1절-

 

성령의 체험을 통해서 온전한 믿을을 얻은 것이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이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라디아서3장3절-

 

성령안에서 거듭난 체험을 헛되게 만들면 안된다.

소망으로 시작해서 절망으로 끝나는 일을 보고도 믿을 수  없다.

안타까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칠 수 없다.

순간순간에 영적으로 사라가길 소망한다.

 

아브라함은 우리보다 미약하게 시작했다.

놀랍게도 창대한 믿음이 되어가는 것을 보여준다.

 24년을 기다려서 아이를 얻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믿지 않았고 자신을 믿지 않았다.

하나님이 하시겠다 하셨으니깐 믿는 것이다.

그 믿음이 의로 여겨진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갈라디아서 3장 6절.-

 

그 이후에는 복이 따라온다.

작은 믿음에도 하나님은 너무감동하신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갈라디아서 3장8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갈라디아서3장9절-  

 

믿으면 성경에서 나타나는 모든 기적들이 내게도 임할 것이다.

나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능치 못하실 일이 없다.

아마 하나님이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그대로 믿음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돌릴수 있길 축복한다.

 

 

 

 

상도장로교회. 금요성령집회. 2017.06.09.

최 승일 목사님. <살기를 바라십니까.> 로마서 1장 17절.

 

 

 

 

십계명을 다 지켜야만 들어갈 수 있고 없고를 따지는게 아니다.

말씀들을 주신 까닭은 거룩하게 살아서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살라는 것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고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신 예수님.

우리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밖어 없다.

 

율법을 다 읽기도 힘들고 외우는건 상상도 못한다.

도둑질을 하면 지옥에 떨어지는 걸까?

 

우리가 합의하에 하나님을 믿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는 방법 외에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알려주신 것이다.

또한 나만 믿으면 내 집도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구원의 절대적인 조건은 주 예수를 믿는 것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로마서 1장 17절 -

 

주 예수를 믿기만 하면 살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름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우리를 위해 죽고 다시 사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

 

1. 유일한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

2. 예수그리스도는 완전한 구원자이다.

3. 최종적인 구원자이다.    

 

이것을 기억하고 항상 생각하고 믿으며 나아가는 것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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