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

 

 

1956년 일어난 헝가리 의거의 영향을 받아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 반공 사조가 팽배해지자

명방운동(鳴放運動)이 시작되었다.

공산당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자유롭게 하여

좀 더 좋은 사회주의를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말한 자는 죄가 없고 들은 자는 반성해야 한다.'고 선포하여

온 국민이 공산당 숙당운동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1957년 2월 모택동은 '온갖 꽃이 같이 피고,

많은 사람들이 각기 주장을 펴도록 하라(百花齊放 百家爭鳴).'고 독려했다.

 

마침내 모택동을 '살인마',

인민민주독재를 '무뢰한의 독재'로까지 부르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상상하기 어려웠던 반공 거리시위도 벌어졌다.

그러나 명방운동의 속내는

'독사(비판자)에게 자유를 주자/'는 것이 아니라

'독사가 스스로 굴 밖으로 나오도록 하여 제거하자.'는 것이었다.

독사들이 다 나왔다고 판단되자

모택동은 마침내 정풍운동을 시작했고

그 숙청에서 무려 80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용기와 지혜를 겸비하려면

개를 닮지 말고 사자를 닮아야 한다.

개에게 돌멩이를 던지면 개는 돌멩이를 보고 달려간다.

그러나 사자는 던진 사람을 보고 달려든다.

누가 무슨 말을 하면 말을 따라하지 말고

그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개 같은 죽음을 면하고 강인한 사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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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길

 

 

자식 많은 부자 노인이 있었다.

집이 아주 넓고 커서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안에서는 들리지가 않았다.

어느 날 노인이 외출했다 돌아오던 중 집에 불이 나서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수많은 자식들은 불이 난 것도 모르고

집 안에서 놀이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불이 나서 위험하다."고 소리쳤지만

자식들은 즐겁게 노느라 신경도 쓰지 않았다.

노인의 비통한 울부짖음도

자식들을 문 밖으로 나오게 할 수는 없었다.

 

소리를 지르다가 지친 노인은 다른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평소 자식들이 좋아했던 것을 생각해보고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이 타고 싶어 하던 진기한 수레들을 가져왔다.

양(羊)이 끄는 수레, 사슴(鹿)이 끄는 수레, 소(牛)가 끄는 수레가

문밖에 있으니 빨리 밖으로 나와라."

노인의 말을 듣자 자식들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내던지고

앞다투어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을 하다가 잘되지 않는다고

포기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관점을 바꿔보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가야 한다.

옳다고 나의 입장만 밀어붙이지 말고

상대가 우하는 것을 찾아보아야 한다.

개혁보다는 혁명이 필요할 때가 있다.

마차의 속도를 증가시키기 위한 노력보다는

자동차를 만들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노인이 예컨데 확성기 같은

불났음을 더 큰 소리로 알리는 수단을 찾고자 했다면

자식들을 살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불났음을 알리기보다

그들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다른 관심사를 찾고자 했기에

자식들을 구할 수가 있었다.

 

책을 책으로 파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책 속에 연하장을 넣어

책을 연하장으로 팔자 많이 팔려나갔다.

좋은 책을 만들려는 개혁보다는

책 아닌 연하장으로 팔려는 혁명이 성공을 가져온 것이다.

불황이라 문 닫는 갤러리가 많다.

그러나 이탈리아 음식점에 그림을 걸자 대박이 났다.

고가의 그림을 사두어야 한다는 부담도 없이

바뀌는 그림 속에서 격조 있는 식사를 할 수가 있었다.

식당은 고객이 많아졌고 수익도 몇 곱절 늘게 되었다.

 

과거의 타성에 젖거나

리더가 독선에 빠져 변화를 거부한다면 발전은 없다.

산의 정상이나 목표에 도달하는 길을 여러 갈래가 있다.

막힌 곳을 고집하며 좌절하지 말고 다른 길을 찾아보아야 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아니 솟아날 구멍이 있는 하늘만 무너지게 되어 있다.

생각만 바꾸면 극복하지 못할 어려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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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꽃씨

 

 

꽃 속에 꽃씨가 있고 꽃씨 속에 꽃이 있다.

복 속에 재앙이 있고 재앙 속에 복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편안함 속에서 위험을 보고

삶 속에서 죽음을 본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권력 속에서 권력만 보고

재물 속에서 재물만 본다.

 

달콜함 속에서 달콤함만 보던 정치인, 권력자, 재력가는

모두 추하게 썩어갔다.

부러워하거나 절망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 땅속에 새싹이 있고

눈물 속에서 웃음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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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과 파리

 

 

벌과 파리를 병 속에 넣은 후

병의 바닥을 창 쪽으로 해서 병을 뉘어놓는다.

그러면 벌은 밝은 바닥 방향에서 출구를 찾다가

지치거나 굶어 죽을 때까지 악전고투를 한다.

그러나 파리는 2분도 채 되지 않나

반대쪽 병 주둥이로 나가버린다.

 

벌은 지능이 높아 가장 밝은 쪽에 출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쪽으로만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지나치게 자신을 과신하고 자신의 논리에 얽매여

다른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리석은 파리는

빛의 방향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날아다닌다.

'단순한 자에게는 행운이 기다린다.'는 격언 그대로

이내 반대쪽 출구를 발견하여 자유스러운 몸이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똑똑한 자의 독선이 아니라

어리석은 자의 다양성이다.

천재의 지식이 아니라

바보의 실천이다.

돈, 권력, 한 방향의 삶이 아니라

꿈과 희망을 나누는 함께하는 삶이다.

벌의 지능이 아니라

파리의 우직함이 자유와 축복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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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물

 

 

어린이는 산을 산, 물을 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른들은 산을 물이라고도 하고

또 바다라고도 한다.

많이 배우고 똑똑할수록 물을 산으로

또 산을 물로 만드는 기술이 뛰어나다.

산을 물로 만드는 기술이 뛰어나다.

산을 물이라 우긴다 해도

산이 흘러 바다로 갈 수는 없다.

물을 산이라 우긴다 해도

물속에서 나무와 꽃이 자랄 수는 없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 따름이다.

 

흐린 날일수록 잘난 사람들이 아우성치고 우기지만

안개가 겉히고 나면 언제나 산은 산,

물은 물이었음이 입증된다.

눈 올 때 마당을 쓸지 않듯

오해를 받더라도 순간순간 대꾸하지 않고

묵묵히 진실을 지켜간다면 언젠가는 모두가 알게 된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 뿐이다.

잘난 어른들보다 맑은 어린이가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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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주사

 

 

부유한 집 자녀들은 고급 승용차로 학교를 다닌다.

가난한 집 자녀들은 걸어서 학교를 다닌다.

그러나 묘한 일이다.

학교를 졸업할 무렵이 되면 자동차를 탄 애들보다

걸어서 다닌 애들이 훨씬 더 건강하다.

가녀를 위한 것이 오히려 위하지 않은 것이 되었고

자녀를 위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위한 것이 되었다.

 

'귀생사지(貴生死地)

선섭생자(善攝生者) 이기무사지(以基無死地)'라는 말이 있다.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 오히려 몸을 망치고 병들게 할 수 있다.

편안하고 따뜻하고 배부른 곳이 죽음의 땅이다.

귀하게 여길수록 몸은 더욱 나빠진다.

반면 절제를 잘하면 죽음의 땅에 들어가지 않는다.

 

요즈음은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만 추구하다 보니

조금만 고생이 되어도 견디지를 못한다.

그러나 '염소는 대추나무에 매어두더야 한다.'

'대추나무의 열매는 장대로 때려서 따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대추나무를 괴롭히거나 두들겨주면 나무가 긴장을 하고

종족 번식의 본능이 살아난다.

 

그래서 후손을 번식시키려고 필사적으로 열매를 많이 맺는다.

소나무도 척박한 환경에서 솔방울이 많이 달린다.

어려운 환경일수록 삶의 의지와

헤쳐나가는 힘은 더욱 강인해진다.

귀하면 오히려 향기가 없고

고난이 있을 적에 오히려 향기가 진해진다.

 

어릴 적보다 삶은 매우 윤택해졌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편하고 즐거웠던 시절보다

힘들고 어려웠던 추억이 더 오래 기억되고 그립다.

처한 환경이 어렵다고 탓할 필요가 없다.

어렵고 고생되는 것이 건강한 삶을 살게 하는 예방주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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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 젓가락

 

 

주왕이 상아 젓가락을 만들 것을 지시하자

기자가 걱정을 했다.

그깟 젓가락 가지고 무얼 그리 걱정을 하느냐고

누군가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기자가 말했다.

"상아 젓가락을 쓰게 되면

모든 생활이 상아 젓가락 수준에 맞추어지게끔 되어 있다.

그릇은 흙이 아닌 옥을 써야 하고

반찬은 패소가 아니라 희귀동물의 고기여야 한다.

또 그런 고기를 먹게 되면 반드시 비단옷을 입어야 하고

고대광실에서 살아야 한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상아 젓가락의 격에 맞추다 보면

천하의 재물을 총동원해도 모자라게 될 것이다."

상아 젓가락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주왕은 마침내 폭군으로 변해갔다.

 

대장부는 작고 사소한 일에 신경을 써서는

아니 된다고들 한다.

그러나 나사못 하나가 거대한 공장을 멈추게 한다.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것에서 시작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미세한 것에서 만들어진다

(天下難事必作易 天下大事必作細).

천 길이나 되는 높은 제방도

개미나 땅강아지의 작은 구멍 하나에 무너지고

백 척 높이의 고대광실도

아궁이 틈에서 나온 작은 불씨로 타버린다.

한비자는 '낌새를 보면 싹을 알고

시작을 보면 끝을 안다(見微以知萌 見端以知末).'고 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반드시 그 조짐이 있게 마련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조그만 조짐에도 주목하고

사전에 그 대책을 세워간다.

초윤장산(礎潤張傘),

주춧돌이 젖어 있으면 우산을 준비해야 한다.

작은 조짐이라도 놓치기 말고

세밀하게 점검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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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그러나 좌우의 날개는

몸체를 보호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본분을 망각한 채

날개가 몸체가 되려는 것은 탐욕이다.

몸체를 잊고 혼자만 하는 쇼맨십의 날갯짓은

우스꽝스럽고 유해하다.

편협한 오기와 독선의 광기는

몸에 치명상을 입힌다.

좌우익의 다툼은 몸을 상하게만 할 뿐이다.

 

좌우의 날개는 몸체가 먹이를 구하고

휴식처를 찾을 수 있게끔 도와주어야 한다.

모든 것은 조화와 균형을 이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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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혜

 

 

시대를 앞서가던 개혁가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었던 갖바치가

손수 가죽신인 태사혜를 만들어주었다.

 

조광조는 태사혜를 신고 이리저리 다녀보다가

후배에게 잘 어울리는지 물었다.

신발을 보던 후배는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신발이 왼쪽은 흰색이고 오른쪽은 검은색입니다.

왼쪽에서 보면 흰 신발이 보이고

오른쪽에서 보면 검은 신발로 보입니다."

"내가 흰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인가,

검은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인가?"

"흰 편에서 보면 검은 신발을 신었다고 할 것이고

검은 편에서 보면 흰 신을 신었다고 할 것입니다."

조광조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내 발에는 딱 맞고 편하기만 하네."

 

조광조는 신진사림파가 보면 개혁적이나

훈구파가 보면 과격하다 할 것이다.

사회의 잘못을 고치려던

개혁자의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고

자신의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쿠데타를 모의한 역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조광조는 색깔 논쟁이 아니라

지치주의(至治主義)에 입각한

왕도정치를 실현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아직도 신발의 색깔과

파벌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색깔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발을 해치지 않고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왼손으로 물을 마시건 오른손으로 물을 마시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좌파냐 우파냐 하는 논쟁에서 벗어나

'물이 오염되지는 않았는지?

유익한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지?

건강 기준치를 통과했는지?'를 먼저 따져보아야 한다.

나쁜 물은 오른손으로 먹건 왼손으로 먹건

몸에는 나쁘다.

이제는 오른쪽, 왼쪽의 미몽에서 깨어나

본질적 문제를 직시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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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를 캄캄한 독 속에 가두어놓으면

3분을 견디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 독 속에 한 가닥 빛을 비추어주면

36시간을 산다고 한다.

빛이 있을 때의 생존율이 빛이 빛을 때보다 720배나 높다.

 

닫힘과 단절은 절망이다.

체력이 좋아도 절망하면 살아갈 수 없다.

열림과 소통은 희망이다.

아무리 열악하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희망이 있으면 쓰러지지 않는다.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사라지고

아내와 부모 형제를 잃는 등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그는 따뜻하고 환한 강단에서 강연을 하는

미래의 자신을 상상하며 어려움을 극복했다.

한 가닥의 희망이 그를 최악의 조건에서 견디게 했다.

 

역경에 처할수록 피하고 숨기보다

만나고 조언을 구해야 한다.

단절된 벽에 자신을 가두어서는 안 된다.

희망의 빛이 스며들게끔 소통의 창문을 만들어야 한다.

소통의 빛이 기적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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