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나무
바람이 나무에게 말했다.
"나무.
너는 바다의 푸름. 사막의 모래바람.
밀림의 풍요를 본 적이 있느냐?
폴 세잔의 그림을 보면서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을 들어본 것이 있느냐?
새로운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며
평생을 한곳에서 옴짝달싹 못 하는 네가
불쌍하기만 하구나,"
나무가 답했다.
"바람.
해와 달과 별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을지 모르지만
한곳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너는 모른다.
누군가의 가슴에 깊이 뿌리내린다는 것,
누군가를 끝까지 한곳에서 기다려줄 수 있다는 것은
이 세상 어떤 멋진 풍경,
어떤 고운 소리와도 바꿀 수가 없다.
너에게는 머무르는 것이 상처이고 아픔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값지고 아름다운 것이다.
흔들리며 떠다니기보다
한곳에서 시작해 한곳에서 끝나는 삶이
나는 더없이 고맙고 행복할 뿐이다."
물이 달을 유혹해도
물속의 달은 물을 따라 흘러가지 않고
바람이 나무를 유혹해도
나무는 바람을 따라 떠돌지 않는다.
마음을 올곧게 뿌리내려야 한다.
어떤 수려한 풍경, 어떤 비싼 장식품도
곧은 마음, 곧은 지조보다 값지거나 아름다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