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마음




길거리를 걷다가 교복 분장을 한 퍼포먼스를 보았다.

시대에 뒤진 엉성함을 비웃기 전에 아련한 설렘이 앞섰다.

엄한 통제 속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한껏 폼을 잡았지만 촌스러울 수밖에 없는 흑백사진,

친구와 아끼던 소품들,

무심코 지나쳤던 그 시절의 모든 볼품없는 것들이

지금의 세련된 것들보다 더 정겹고 더 그립다.

여우도 죽을 때는 자기가 살던 굴을 향하듯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이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의 참모습 아닐까?


수급불류월(水急不流月),

물은 급하게 흘러도 물속의 달은 흐르지 않듯

세월이 아무리 빠루게 변해도

초심은 늘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

풍성한 물을 보며 물줄기를 잊으면

강물은 쉬 마르고 만다.

강물이 넘칠 때는 그 풍성함이 영원할 것 같다.

그러나 잠시만 물줄기가 말라도

강물은 금세 바닥을 드러내게 된다.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

처음으로 눈이 맞았던 그날의 그 떨림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환하게 웃던 그날의 그 순결함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설레던 그 첫 마음은

영원히 변하지 말아야 한다.


돈과 권력이 넘칠 때는 그것이 영원할 것 같다.

그러나 조금만 자만하면 하루아침에 부도가 난다.

로마제국과 잉카제국도 망했다.

노키아, 소니, GM 같은 세계 최고 기업도

한순간에 거꾸러진다.

임기 초 절대 권력은

임기 말 부패 권력으로 판명이 난다.

좀 나아졌다고 근본을 잊고

오만에 빠져서는 아니 된다.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한다.

동그라미를 그리려면

처음 시작했던 자리로 되돌아가야 한다.

해맑고 순수하던 처음으로 돌아가야

정겹고 포근한 동그라미를 완성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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