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사혜

 

 

시대를 앞서가던 개혁가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었던 갖바치가

손수 가죽신인 태사혜를 만들어주었다.

 

조광조는 태사혜를 신고 이리저리 다녀보다가

후배에게 잘 어울리는지 물었다.

신발을 보던 후배는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신발이 왼쪽은 흰색이고 오른쪽은 검은색입니다.

왼쪽에서 보면 흰 신발이 보이고

오른쪽에서 보면 검은 신발로 보입니다."

"내가 흰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인가,

검은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인가?"

"흰 편에서 보면 검은 신발을 신었다고 할 것이고

검은 편에서 보면 흰 신을 신었다고 할 것입니다."

조광조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내 발에는 딱 맞고 편하기만 하네."

 

조광조는 신진사림파가 보면 개혁적이나

훈구파가 보면 과격하다 할 것이다.

사회의 잘못을 고치려던

개혁자의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고

자신의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쿠데타를 모의한 역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조광조는 색깔 논쟁이 아니라

지치주의(至治主義)에 입각한

왕도정치를 실현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아직도 신발의 색깔과

파벌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색깔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발을 해치지 않고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왼손으로 물을 마시건 오른손으로 물을 마시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좌파냐 우파냐 하는 논쟁에서 벗어나

'물이 오염되지는 않았는지?

유익한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지?

건강 기준치를 통과했는지?'를 먼저 따져보아야 한다.

나쁜 물은 오른손으로 먹건 왼손으로 먹건

몸에는 나쁘다.

이제는 오른쪽, 왼쪽의 미몽에서 깨어나

본질적 문제를 직시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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