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우리나라에서 당쟁의 대표로 꼽히는 것이 예송 논쟁이다.

효종과 효종비 인선왕후가 죽은 후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조대비)가

상복을 얼마 동안 입어야 하는가를 두고

2차례에 걸친 싸움이 있었다.

목숨이 오가는 긴박하고 치열한 싸움이었다.

당시 서인(西人)의 좌장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었는데

어느 날 중병에 걸렸다.

용하다는 의원은 다 진맥을 해보았지만 고치지를 못했다.

 

우암은 마침내 아들에게 미수 허목 선생에게 가서

처방전을 받아오라고 했다.

미수는 의술에는 밝았지만 앙숙 간이었던 남인의 좌장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약방문에는 온갖 독약이 가득했다.

우암 측근들은 미수가 우암을 독살하려 한다고 믿고

매우 흥분했다.

모두 처방전을 따르지 말라고 간언했다.

그러나 선생은 약을 줄이거나 빼지 말고

처방전 그대로 약을 지을 것을 명하였다.

그 약을 드신 후 병은 깨끗이 나았다.

원체 중병이라 극약처방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정책 대결을 벌일 적에는 생사를 걸고 싸웠지만

학문에 대한 존중이나 사람에 대한 존경과 신뢰는

늘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숙적에게 욕먹을 줄 알면서 극약처방을 해준 분이나

주위 반대를 물리치고 그걸 덥석 믿은 분이나

모두 배포가 대단한 분들이다.

정적이더라도 상대에 대한 평가나

마음 깊이 통해는 따뜻한 배려는 배워야 한다.

큰 마음, 열린 자세가

위대한 사람, 위대한 세상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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