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조와 의리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는 임금인 영조의 사워였다.

덕분에 추사는 어린 시절부터 남부러울 게 없는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그가 55세 때 당쟁에 휩쓸려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반대파들의 박해는 갈수록 심해지고

친구들의 소식도 점점 줄어들었다.

가장 친한 친구

그리고 사랑하는 부인의 죽음도 지켜볼 수가 없었다.

명망 있던 남편을 귀양 보내고

눈물로 지냈을 부인의 심정을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리움과 원망을 시로 담았다.

 

<어떻게든 월하노인 저승 법정 세워놓고

내세에는 남편 아내 처지 바꿔 태어난 뒤

나 죽고 천리 밖에 그대 혼자 남게 하여

나의 이 슬픈 심정 그대도 알게 하리.>

 

평생 고생을 모르던 추사로서는

유배 생활이 몹시도 견디기 힘들었다.

제자였던 이상적은

그런 김정희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통역관이었던 이산적은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마다

최신의 서적들을 구해다 김정희에게 보내주었다.

 

그것들은 모두 쉽게 구할 수 없는 책들이었다.

특히 『경세문편(經世文編)』 같은 책은

권력 있는 사람에게 바치면 출세가 보장된 만큼 귀한 책이었다.

그러나 이상적은

유배되어 아무 힘도 없는 김정희에게 보내주었다.

이상적의 변함없는 지조에 감동한 추사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기개를 떠올려 세한도(歲寒圖)를 그렸다.

세한도는 쓸쓸함과 적막함.

그리고 날씨의 추위가 아니라 세월의 한기가 느껴진다.

 

추사 자신의 공허하고 고독한 마음을 나타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겨울이 온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이 더욱 돋보인다.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이

귀양 온 뒤라고 해서 더 못한 것도 없다,.

그러나 이전의 그대는 특별함이 없었지만

이후의 그대는 성인의 칭찬을 받을 만하지 않는가?'

 

세한도는 미학적 아름다움 못지않게

그 속에 담긴 '지조와 의리'가 작품의 품격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세상에 그 절개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도

소나무와 잣나무는 그대로이고

세상에 그 절개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소나무와 잣나무는 그대로이다.

겨울이 와도 변하지 않는 '지조와 의리'를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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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소변

 

 

1964년 불황 때 어느 회사의 사장이

일본에서 '경영의 신(神)'으로 추앙받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에게

돈벌이가 안 되어 힘들다고 불평했다.

그러자 고노스케가 물었다.

"당신은 지금까지 소변에 붉게 피가 섞여 나온 적이 있었습니까?"

그가 없다고 대답하자 고노스케가 말했다.

"아직까지 진짜 힘들지는 않았군요.

소변이 붉어질 정도의 마음고생이 없이는 사업이 발전할 수 없습니다.

2층에 어렴풋 올라가고 싶다고 생각만 하는 사람은

올라갈 수 없음을 불평만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든 올라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사다리를 발명합니다.

불황을 타개할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발로 뛰어보십시오.

길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 사장은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회사를 재건했다고 한다.

 

실패를 하는 이유는 실패한 채로 중단해버리기 때문이다.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면 실패란 존재하지 않는다.

고노스케는 초등학교를 중퇴해야 할 정도로 가난했지만

가난을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부지런함을 가르쳐준 스승으로 여겼다.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것은 부모의 부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도전과 용기이며,

학력이 아니라 긍정적 태도와 열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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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부이치치

 

 

닉 부이치치는 1982년 호주 멜버른에서

팔과 다리가 없이 두 개의 발가락만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희망인 사람이다.

 

닉은 어느 날 축구를 하다가

발가락을 다쳐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 때 그는 발가락 때문에

그동안 참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고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팔다리가 없다고 불평하기보다

두 개의 발가락을 가졌다는 사실에 오히려 감사했다.

 

닉은 두 개의 발가락만 가지고도

음악을 연주하고 수영, 축구, 골프를 즐긴다.

가진 것이 없다고 불평해서는 아니 된다.

사지가 멀쩡한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다.

자살까지 시도했던 닉이 겪었을 분노와 절망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주위 모든 것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모두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팔다리 없는 사람도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을 떄

닉은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니라 축복받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겨낼 수 있는 불편을 불행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시련이 없었다면 닉의 삶은 감동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느님은 닉에게 팔과 다리를 주는 대신

모두에게 희망을 주라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는지 모른다.

시련을 불행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각자의 희망 메시지를 찾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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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리사의(見利思義)

 

 

양혜왕이 맹자를 초청하여 나라를 이롭게 해달라고 하자 맹자가 답했다.

 

"왕께서는 하필 이(利)를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

만약 왕께서 이익만을 생각하신다면

신하나 선비, 백성들도 모두 제 한 몸 이로움만 생각하게 됩니다.

 

1만 대의 병거(兵車)를 가진 천자를 죽이는 자는

1천 대의 병거를 가진 대신입니다.

1천 대의 병거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니지만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면 임금을 죽여서라도 다 빼앗아야 합니다.

 

개인이 이익 추구에 몰두하면

온갖 불의를 서슴지 않다가 몸을 망치게 되고,

가족들이 저마다 이익에만 급급하다 보면

부모와 자식 사이에 불화가 생기고,

형제가 서로 다투어 그 집안은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나 어진 사람은 부모를 버리지 않고,

의리가 있는 사람은 임금에게 등을 돌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왕께서는 오직 인의(仁義)만을 말씀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 이익에 대해 말씀하십니까?"

 

눈앞의 이익을 보면 먼저 의로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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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천만매린(千萬買隣)'이라는 말이 있다.

'천만 냥을 주고 이웃을 산다.'는 뜻으로

이웃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남조시대 송계아라는 관리가 퇴직을 하게 되어 새 집을 마련했다.

그가 산 집은 남들이 추천해주는 쿄통 좋고 학군 좋은 집이 아니라

여승진이라는 사람의 이웃집이었다.

100만 냥밖에 안 하는 집을 1000만 냔이나 주고 샀다는 소문에

여승진이 왜 그리 비싸게 샀는지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송계아가 말했다.

"100만 냥으로 집을 사고

1000만냥으로 이웃을 샀습니다(百萬買宅 千萬買隣)."

여승진은 자신을 귀하게 대해주는 그를 융숭하게 맞이했다.

 

세상이 많이 각박해지다 보니 아파트 층간 소음이나

일조권 문제로 다툼 끝에 살인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비탈길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통학버스를 몸으로 막아

목숨 걸고 학생들을 구한 이웃도,

또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대신 죽은 이웃도 있다.

어떤 이웃을 만나느냐에 따라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목숨을 건질 수도 있다.

 

영혼이 맑은 좋은 이웃들을 찾아가고

그분들의 품성을 닮도록 노력해야 한다.

 

좋은 이웃과 어울려 산다는 것은 크나큰 은총이다.

교통이나 학군보다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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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 수행자가 큰스님과 함께 공양하는

귀한 기회를 갖게 되었다.

공양이 끝나자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

큰스님께 한마디 가르침을 청했다.

스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꽤 오랜 침묵이 흐른 후 스님이 말씀하셨다.

"공양이 끝났는가?"

"네, 그렇습니다."

"그럼 바리때를 씻어라."

 

진리는 먼 곳에 있지 아니하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이

바로 진리요, 가장 아름답게 사는 것이다.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살았다면

일생을 성실하게 산 것이다.

성실한 하루가 성실한 일생을 만든다.

현재는 과거에 갇히거나 미래에 희생되어서는 아니 된다.

지나간 1분은 세상의 돈을 다 주어도 살 수가 없다.

그 어떤 부나 지위도 현재 이 시간보다 중할 수는 없다.

 

세상은 불공평하다고들 하지만 시간만큼 공정한 것은 없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하루의 시간을 동일하다.

잠시만 지나도 억만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 시간이다.

 

자신이 세상이 어떤 쓰임새가 있을지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숙고해보아야 한다.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의 집중.

어미 닭이 알을 품을 때의 열정으로

매 순간을 값지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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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방황

 

 

일직선으로 200m 앞에 목표를 세운 후

눈을 가리고 20m를 걸으면 목표에서 4m를 벗어나게 된다.

계속 겆게 되면 큰 원을 그리면서

같은 장소를 빙빙 돌기만 할 뿐 목표에는 다다르지 못한다.

눈을 가리거나 사막처럼 사방이 똑같은 곳을 걸으면

직선으로 가지 못하고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이런 현상을 '윤형방황(輪形彷徨)'이라고 한다.

 

알프스에서 행방불명되었던 등산가가 13일 만에 나타났다.

그는 매일 12시간씩 걸었으나

구출장소가 길을 잃어버린 장소에서 6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같은 장소를 팽이처럼 돌았던 것이다.

윤형방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지도, 나침반, 북극성 등과 같은

길잡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둘째, 30보쯤 걷고 난 후 쉬었다가

다시 새 각오로 30보 걷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도 윤형방황이 있다.

변화와 개혁을 위해 열심히 앞으로 나아간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결국 고정관념이나 과거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마다 새 출발을 다짐하지만

연말이 되면 과거의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몇 해 전과 비교해도 계속 같은 곳을 방황만 하고 있다면

새로운 시도를 해보아야 한다.

멘토나 책을 길잡이로 하여 좌표점검을 다시 해본다.

어려움에 굴하지 않던 선비의 기개를 본받아본다.

반복되는 일,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과감히 결별하고

새 길을 가본다.

대나무가 매듭을 짓고 자라듯 매월 말 잠시 쉬며

한 달을 매듭짓고 새 각오로 다음 달을 준비해간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후회 없이 미련 없이 멋지게 살아야 한다.

윤형방황으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아니 된다.

새로운 길의 힘들고 불안함,

그 자체가 삶을 풍요롭게 하는 모험이요, 도전이다.

새 지표 새 각오로 부딪치고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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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도자기는 속이 비어 있기 때문에 세상에 유익하게 쓰일 수 있다.

속을 다 메워버린 도자기는 단 한 방울의 찻물도 담을 수가 없다.

비어 있는 도자기라야 모든 물건을 다 담을 수 있다.

도자기의 이로움은 채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움에 있다.

 

그릇이 클수록 비움도 커진다.

사람의 몸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공간이 있어야 하고

그림도 여백의 미가 있어야 한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탐욕으로 가득 차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지만

비우면 온 우주를 담을 수 있다.

크게 비우는 사람만이 크게 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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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사자는 배부르면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는다.

다른 동물의 먹이를 탐하지도 않는다.

사자는 먹다 남은 먹이를

자신만을 위해 따로 감추어두지 않는다.

적정량을 먹고 나면

다른 동물들을 위한 식량으로 남겨둔다.

사자가 남긴 먹이는 밀림을 살찌운다.

사자는 무모한 살생을 하지 않으며

적절한 공존을 도모한다.

 

배불러도 사냥을 계속하려는 탐욕은

인간 세상에만 있다.

밀림을 약육강식의 정글이라고 비난들을 하지만

도덕,윤리를 외치며

99개를 가진 자가 1개를 뺏어

100개를 채우려는 세상보다는

훨씬 더 배려와 평화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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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풂

 

 

'도리불언 하자성혜(挑李不言 下自成蹊)'란 말이 있다.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는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스스로 모이므로 길이 생기게 된다는 뜻이다.

도리(挑李)는 꽃이 아름답고 열매가 맛있어

따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자연스레 길이 만들어진다.

무엇이건 나누어줄 줄 알아야 한다.

베풂이 있는 곳에는 늘 존경과 찬사가 따르게 되어 있다.

 

덕 있는 사람은 잠자코 있어도

그 덕을 사모하여 사람들이 모여들게 된다.

'좋은 사람을 찾는 것'보다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

좋은 사람이 되고 나면

어느덧 주위에도 좋은 사람들이 가득 넘치게 된다.

주먹을 쥔 손보다는 기도하는 손이 더 강하다.

주먹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아픔을 겪게 하지만

기도는 언제나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자신만을 아는 힘세고 잘난 사람보다는

부족해도 배려하며 함께하는 사람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

 

난초는 자신만 향기로운 것이 아니라

주위를 다 향기롭게 한다.

나누고 함께하며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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